2020년에는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그 병과 유관하게, 무관하게 그러했다. 2021년의 첫 글은 2020년에 대한 회고여야 한다. 그 병을 이야기하지 않고 2020년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나는 오래도록 해온 일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7년간의 독서모임부터, 혹은 고3 야자시간에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을 보며 울었던 때부터, 혹은 또래보다 한글을 늦게 땐 초등학생부터 읽는 행위는 이어져왔다.
2020년에는 42권의 책을 읽었다. 모두 완독한 것은 아니고, 일부는 100페이지 정도만 읽고 던져버린 것도 있다. 42권의 책을 최고, 가치있는, 보통, 별로, 쓰레기 5가지 단계로 분류했다. 42개 모두를 이야기하는 건 너무 지난한 일이라, 상위 2분위 14개 도서에 대해서 간단한 코멘트와 함께 안내드리고자 한다.
강한 울림, 영감, 탄성, 놀라움, 경이 등 어떤 충격과 감정을 안겨준 작품들을 모았다.
현대의 모든 판타지는 돌킨의 번형이다. 이영도를 제외하고는. 어떻게 인간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2002년이라는 먼 옛날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세계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20년 전의 작품을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는 건, 이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름직함의 근거가 된다.
<“그 전에 부탁이 있소.” “예? 말씀만 하십시오! 무슨 부탁이죠?” “앞으론 노래 좀 자제해 주시오. 그 자의 노래를 들어야 하니까.” 비형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비형은 물끄러미 바라보는 케이건의 시선에 허둥거려야했다. “아차, 노래 부르지 말랬지요?”>
가장 좋은 연기는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연기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헨미 요의 에세이는 '나도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에세이다. 헨미 요는 종일 탐나는 문장으로 먹는 행위, 그리고 이에 비롯하는 생존과 삶을 해석한다. 그의 차분한 호기심과 행동력, 그리고 때때로 무례함은 환상적이다. 인생에 한 권의 책을 갖고가야한다면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 한 권을 더 꼽는다면 헨미 요의 먹는 인간이다.
<나는 내 혀와 위가 못마땅해졌다. 오랫동안 포식에 익숙해져 버릇이 없어진 데다 무엇을 먹었는지 곧 잊어버리기 일쑤며 매사에 아무 감동도 받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있는 내 혀와 위. 이 녀석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극한의 상황에서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이 기묘한 여행의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정오가 지나 노동이 끝난 다음 광부 클럽의 식당에서 그것을 만났다. 그 전에 나는 한심한 나 자신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샤워를 했다. 입에서는 문어처럼 검은 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검은 물이 질릴 정도로 엄청 나왔다. 목구멍이 바싹 메말라 있었다. 광부 클럽에서 먼저 맥주를 마셨다. 쿠하르스키가 말했다. “이게 석탄 먹은 입을 씻어 주지.” 몸속에 시원한 물줄기가 생겼다. 그리고 수프를 먹었다. 보기에는 이렇다 할 특색도 없는, 건더기가 듬뿍 들어간 갈색 시골풍 수프 보그라치라는 것이다. “와, 맛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열광했던 것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아서 아쉬웠던 작품이다.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발생한다. 철학은 시대의 자식이다. 대한민국은 수입한 철학으로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스스로 생상한 철학의 부재로 선진국이 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이 모습은 수능을 치고 대기업에 취직한 뒤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과 닮았다. 국가, 혹은 민족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기묘한 체험을 제공한 책이다.
<원래 동양에는 ‘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특별한 지적 형식이 없었다. ‘철학’이라는 지적 형식에 맞출 수 있는 내용은 있었지만, 그런 제목을 단 독립적 형식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동양 철학’ ‘중국 철학’ 혹은 ‘한국 철학’이라고 하면, 다루는 자료가 과거의 것들이기 때문에 매우 오래된 학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 모두가 신흥 학문에 속한다.>
<철학적 차원에서 사유한다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비유하면, 전략적 차원에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한층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뜻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움직임에 종속적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철학을 수입한다는 말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은 수입한 그 생각의 노선을 따라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해 삶 전체의 종속을 야기한다. 생각을 수입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수출하는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들을 수용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생각하는 일이 어려워져버린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들은 잘 숙지하면서, 스스로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열광했던 만큼 내가 열광하지는 않았던 작품이다. 이들의 실험은 갈팡질팡하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라는 대답에 대해 하나의 멋진 사례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 책은 방황하는 이에게 좋은 위로가 될 것이다. 글을 잘 쓰면서 동시에 특수한 삶을 사는 사람이 너무나 적은 것이 아쉽다.
<게다가 최고로 좋은 점은, 우린 여전히 ‘싱글’이라는 점이다. 명절이면 각자 부모님께 다녀오거나 안부를 전한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함께 산다는 점에 매우 흡족해하신다. 훨씬 든든하다나. 요리를 잘하시는 동거인의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챙겨서 보내주신다. 나는 찾아뵙거나 효도 여행 계획을 짤 필요 없이 “맛있다!”라고만 하면 된다. 싱글 생활의 가뿐함과 동거의 유리함이 함께한다.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가 잘 맞는 운 좋은 케이스다. 혼자 살기 아니면 결혼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우리의 즐거운 동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마나 아까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