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장] 2020 장문장 권장도서 이후로 두 번째로 써보는 1년의 독서소회.
작년에는 22권의 책을 읽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2020에는 42권을 읽었는데, 2021에는 대충 절반을 읽었다. 그래도 최고 4개 가치있는 10개 숫자는 같으니, 셀렉션을 잘 한 셈이다.
올해는 간단하게 최고 4개만 이야기해볼까 싶다. 이제 글을 올릴 곳도, 읽을 이도 딱히 없으니.
망했는데. 세 번째 항암 치료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I’m pretty much fucked”, 마션의 첫 문장이 생각나는 허지웅의 암투병 생존기다.
이 에세이가 죽여주는 이유는 허지웅이 나와 유사도가 매우 높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타인이 나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변호해주는 경험을 했다.
허지웅은 니체가 잔인하리만치 강인함을 요구하는 것을 사랑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없다. 그저 개인이 진창을 벗어났으면 기원한다. 그는 “실명으로 쓸 수 없는 글이랑 존재해선 안 됐다”고 회상하며 “나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고 담담하게 말한다.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너무 믿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점도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당신은 나와 같아요, 라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것이 좋은 에세이다. 당신의 한 부분을 이해하고, 나의 한 부분을 대어보고, 둘이 합치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감동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다르더라도. 흐릿한 인류애는 거기서 얄팍하게나마 구체화된다.
의료진은 말을 바꿨다. 2개월 남았으니 호스피스 병동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손과 다리에서 힘이 다 빠져나갔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살 수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너는 죽는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건 마치 내일 비가 온다는 무미건조한 예보와도 같았다. 해가 뜬다고 하지 않았나. 70퍼센트의 확률로 해가 뜬다고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아쉬탕가는 요가 중에서도 유서가 깊고 체계가 과학적이다. 그래서 엄격하다. 땀 닦느라 동작에 집중을 못 했더니 사라 코너가 발로 내 손에 들려 있던 수건을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오 신이시여. 다른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우리 사라 코너가 아쉬탕가 선생님 중에 비교적 온화한 편이라고 한다. 다른 선생님들은 발로 아랫배라도 걷어차는 모양이다.
내게는 가면을 벗고 있어도 좋은 친구들이 세 그룹 정도 있다. 서로 성격도 생각도 하는 일도 다른 사람들이다. 거기서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버티면서 언젠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친구들과 모색하면 된다.
“나는 얼마 전에야 처음으로 전부 읽어보고…….” “우셨나요?” “아니요, 울었다기보다……. 글렀죠. 인간도 저 지경이 되면 이미 그른 거죠.”
모두가 첫 문장을 인용하지만, 나는 마지막 페이지의 한 장면을 인용해본다.
인간실격은 글러먹은 인간인 오바 요조의 이야기다.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좌절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는 인간관계의 원리에 상처받고 좌절한다는 점에서 글러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