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장문장 권장도서 이후 세 번째로 써보는 1년의 독서소회.

작년에는 34 권을 읽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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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12권을 더 읽었지만 <최고>는 4개로 같고, <가치있는>은 6개로 줄었다. 소설이나 인문학보다 스터디를 위한 정보성 책을 많이 읽은 탓이다.

이번에는 <무가치한>에 2 작품이 들어갔는데, 원래 항목은 쓰레기였지만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조정했다. 그정도는 아니니까.

허지웅은 작년 <살고 싶다는 농담> 으로 <최고>를 받은 작가지만, 이번 신작은 엄청나게 나이브하고 하찮아 그 모든 총기를 잃은듯한 모습이다.

이어령의 <메멘토모리>는 차마 못봐줄만한, 옛날 옛적의 유행어를 묘비명으로 적어둔것만 같은 작품이었다.

가장 안 좋은 것은 가장 좋은 것 만큼이나 의미가 있어서 굳이 코멘트를 써봤다. 중요한 건 <최고> 4 작품이다.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평균적인 조종석을 만들어봐야, 누구에게도 맞지 않을 뿐이었다.

<평균의 종말>은 평균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 사회에 어떻게 자리잡았고, 역사적으로 어떤 이득을 주었으며, 그래서 지금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이야기한다. 평균에 대한 문화인류학 같기도한 이 책에서 토드 로즈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교육, 혹은 자기개발에 대한 제안이다. 1차원적인 평균에서 벗어나 다차원적인 개개인성을 기반으로 교육하거나, 스스로 성장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주장이 교육으로 빠지는 것은 토드 로즈 스스로가 중학교 때 ADHD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말하자면 하위 n%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교수인 그의 주장은 나에게 썩 위안이 되었다. 끊임없는 경쟁속에서 하나의 숫자나 등급으로 줄세워진, 그러면서 엎치락뒤치락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있는 대부분 내 지인들도 같은 스트레스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능이 다차원적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책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940년대 미 공군의 전투기 조종석 일화가 재미있다. 당시 공군에서는 전투기 조종석을 조종사들의 평균 신체사이즈에 맞춰서 만드려고 했다. 공군은 키부터 엄지손가락 길이까지 140개 신체 치수를 측정했다. 당시 측정 담당이던 길버트 S. 대니얼스 중위는 해당 프로젝트가 썩 내키지 않았다. 그는 조종석 설계에 주된 영향을 주는 10개 신체 치수를 골라서, 10개 모두 평균값의 30% 편차 안에 드는 조종사가 몇 명인지 파악했다. 예를 들어 당시 평균 키는 175cm 였는데, 30% 편차는 170~180cm 정도였다. 그의 동료들은 대부분의 조종사가 편차 내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10개 항목 모두 평균에 속하는 조종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임의로 3개 항목을 골라서 비교해봐도 평균에 속하는 조종사는 고작 3.5%에 그쳤다. 대니얼스가 맞았다. 평균적인 조종석을 만들어봐야, 누구에게도 맞지 않을 뿐이었다. 이 발견은 비행기 조종석을 각자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고, 현대의 자동차시트가 그 수혜를 온전히 받고 있다.

테일러주의자들은 아이들을 모아 산업체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근로자로 성장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전체 교육 시스템의 구조를 과학적 관리의 중심 신조에 따라 재편하는 일에 착수했다. 즉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평균 중심으로 표준화하기에 나섰다. 전국 곳곳의 학교들이 ‘게리 플랜Gary Plan’을 채택했다. 그 원조 격인 인디애나주의 산업화 도시 지명을 따서 이름 붙여진 게리 플랜은 학생들을 (성적이나 관심사나 적성별이 아닌) 나이별로 나눠놓고 그렇게 분리된 그룹별로 교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표준화된 시간 동안 수업을 받게 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미래의 직장생활에 정신적 준비를 갖추게 하려는 차원에서 공장의 종을 흉내 낸 학교 종을 도입하기도 했다.30

본질적으로 따지자면 케틀레도, 로드와 노빅도 한 사람을 여러 번 측정하는 것과 여러 사람을 한 번 측정하는 것은 서로 대체 가능하다고 봤던 셈이다. 몰레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아하! 체험’의 순간을 겪었다. 그 순간 로드와 노빅의 이 별난 가정이 단지 검사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님을, 다시 말해 바로 그 가정이 개개인을 연구하는 모든 과학 분야에서 연구의 토대로 활용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견고하다고 추정되고 있던 다방면의 과학적 도구들에 대한 유효성에 의문이 들었다.

평균의 시대를 특징짓는 2가지 가정은 무엇인가? 평균이 이상적인 것이며 개개인은 오류라는 케틀레의 신념과 한 가지 일에 탁월한 사람은 대다수의 일에서 탁월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골턴의 신념이다. 그러면 이번엔 개개인의 과학이 내세우는 주된 가정은 뭘까? 개개인성이 중요하다는 신념이다.19 즉 개개인은 오류가 아니며 개개인을 (재능, 지능, 인성, 성격 같은) 가장 중시되는 인간 자질에 따라 단 하나의 점수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그는 엄지와 검지로 바늘을 잡고는 바늘귀에 실 한 올을 꿰더니 그 파괴의 잔해에서 그나마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물고기 하나를 겨냥했다. 그러고는 한 번의 유연한 동작으로 바늘을 물고기의 목살에 찔러 넣어 이름표를 꿰매 붙였다. 폐허에서 구해낼 수 있는 모든 물고기에 이 작은 동작을 반복했다. 이제는 절대 이름표를 유리단지 안에 어정쩡하게 넣어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각자의 이름을 바로 그 물고기의 피부에 꿰매 붙였다. 목에, 꼬리에, 눈알에 꿰매 붙인 이름들. 이 작은 혁신은 도전적인 소망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의 작업은 혼돈의 맹공 앞에서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라는, 다음번 혼돈의 공격 때는 그의 질서가 흔들림 없이 우뚝 서 있을 거라는 도전적인 소망.

초반에 이런 뻔뻔한 문장을 적어놓다니 작가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마 올해의 책이라고 부를만한 대작이다. 무수한 추천사에 나도 한 발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