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장문장 권장도서 에 이어 올해는 고작 27권을 읽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최고>가 2개, <가치있는>은 7개로 조금 줄었다. 그래도 별로가 4개니까 똥볼은 덜 찼다.
내가 작년에 <최고>라고 했던 책들은 분명 지금도 내게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뽑은 두 권의 책도 그런 책들이다. 물론 <가치있는>의 책들도 훌륭하고, <보통>도 관심사가 맞다면 권장할만한 책들이다.
1년이 지나서 평가를 하다보나 당시의 감상만큼이나 내가 얼마나 자주 인용했는지가 중요한 평가요소였다. 최고가 딱 2권이라서 조금 아쉬운 한 해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은 정말 좋았지만, 최고로 뽑기에는 딱 한꼭지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현실의 노동문제를 비판한 책이라서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좆게 되어서, 약간의 공허감을 남겼다. <사람, 장소, 환대> 역시 매우 좋은 책이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수준이 떨어져서 소화를 제대로 못 했다.
<무가치한>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불편한 편의점이나 달러루트 꿈백화점이나 그런 류의 힐링물인데, 책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이것이 유행한다는 것에는 의미가 있었다. 어머니께 왜 이런 소매 잡화 힐링물이 유행하는지 물어보니 어머니께서는 “오직 소비만이 정체성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너희들이 발돋움하며 입술을 맞대고 서로 마실 때 아, 얼마나 그때 기이하게도 마시는 자는 그 행위로부터 멀어져 가는가!
어떤 문장들은 너무나 선명해서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물러서게끔 만든다. 그것이 진실을 담고있다는 예감이 들게끔.
신형철은 전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도 정확한 언어로 감정을 다루는 솜씨를 보여주었는데, 이번 작품은 시 평론이다. “나는 문학을 사랑한다. 문학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라는 그의 말이 애처롭다.
나는 시를 그리 즐기지 않는데,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도 모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을 읽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인생의 역사>에서는 꾸밈없이 자신이 음미한 그대로 시를 소화시켜준다.
신형철이 사랑하는 시는 신형철이라는 사람을 나타낸다. 여기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 『나란 무엇인가』를 인용하며 분인(分人) 개념을 설명하는데, 타인과의 관계에서 태어나는 자아를 말한다. 신형철이 읽은 시를 따라 읽자면 사람간의 관계에서만 새로운 내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대상이든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탄생한다.
무언가 사랑한다면 그것을 사랑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 이영광, 사랑의 발명
지금껏 윤상의 음악을 재편곡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은 사람은 단 하나뿐인데, 그것은 바로 윤상 자신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진화의 결과 탄생한 성적 장식물은 배우자의 자질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호 전달자’와 ‘선택자’의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진화는 심지어 퇴폐적decadent이기까지 하다.
바우어새와 덕 페니스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다녀서 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