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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5권을 읽었고, <최고>가 6권에 <가치있는>도 12개나 된다. 2023 장문장 권장도서 에서는 27권을 읽고 <최고>가 2개, <가치있는>은 7개였으니 24년의 타율이 상당히 좋았던 셈. 어떻게 보면 올해 좀 더 후해졌다고 볼 법도 한데, 막상 23년 목록을 보면 그닥 판단기준이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 <가치 없는>이 0권인 것도 대단하다. 참고로 <가치 없는>은 1<눈나경>으로 대체되었는데, 내가 어느 안경점에 들렀다가 내 안경을 보고 주인 아저씨가 “조금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눈이 나빠서 쓰는 안경 같다” 라고 해서 그렇게 지었다. 내 생에 그렇게 직설적인 표현은 처음 들어봤기에 감탄했다.

올해는 1000페이지 짜리 벽돌책들을 몇 개 읽었다. 이런 책을 읽을수록 역사의 가치를 느낀다. 이들 책들은 모두 과거를 읽어서 현재를 해석하려는 시도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학을 표방한 하나의 역사책인데, 인간과 사회의 변하지 않는 특성, 본질적인 요소를 이해하는 데는 역사가 가장 좋은 도구다. 나는 국사가 싫어서 서울대도 포기한 인재인데, 서른 살이 넘어 이렇게 역사를 공부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라가 나에게 역사를 이렇게 가르쳤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나는 원래도 문화인류학 책들이 참 재밌었다. <디저트의 모험>이나 <그랜드투어> 같은 책들 말이다.

잘 이해 못한 책들은 대게 <보통>에 포함되었다. <좁은 회랑>이나 <신호와 소음>은 분명 좋은 책이지만 소화가 잘 안 됐다.

마찬가지로 6권의 <최고>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추천사를 남겨볼까 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타고난 자원이나 기후, 문화(국민성)로 국가의 흥망을 설명하는 기존 이론을 비판한다. 저자들은 비슷한 환경이나 배경에서도 다르게 성장한 여러 국가를 비교하면서 포용적인 정치-경제 체제가 선순환하면서 국가의 부를 이룬다고 주장하며, 포용적 체제의 시작과 발전을 유럽, 미대륙, 아프리카, 아시아를 순회하면서 설명한다.

아마 이 책의 주장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포용적인 정치-경제 체제가 국가에 부를 가져다준다는 가설 정도야 누구든 세울 수 있다. 저자들은 시간적으로 로마부터 현대까지, 공간적으로 지중해부터 태평양까지 수많은 사례들을 아울러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야말로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세상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책을 읽을때면,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살고있을 누군가를 시기하게 된다. 나만 이걸 몰랐단 말이야? 이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이 지식은 아무나 주울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왜 이제야 이걸 읽었을까? 하는 아쉬움 말이다. 물론 제대로 소화도 못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방만한 일이다.

렐레 부족의 열등한 사냥 및 농경기술이 지리적 요인 때문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들은 부숑 부족이 사용하는 도구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무지한 탓도 아니다. 문화를 이유로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렐레 부족은 문화적인 이유로 사냥 그물이나 튼튼하게 잘 지은 집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 또한 사실이 아닌 듯했다. 콩고인과 마찬가지로 렐레 부족도 총을 사는 데 더없는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더글러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총기류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것만 봐도… 장기적인 협력과 수고가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들의 문화가 열등한 기술에 발을 묶어놓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국화와 칼

국화와 칼은 가장 실용적인 문화인류학이다. 작가인 루스 베네딕트는 태평양 전쟁의 말기에 미국이 일본을 어떻게 통치해야할지에 대한 사전조사로 일본인에 대해 연구했다. 한 국가의 문화, 또는 국민성을 연구하는 행위 자체가 흥미로웠고, 일본을 국화와 칼이라는 두 상징으로 압축한 것도 재치있고, 일본 자체의 기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특성들이 놀라웠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작가가 일본을 방문해서 쓴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당장 전쟁중인 적대국이니 그럴만도 하다. 작가는 미국에서 일본인을 인터뷰하거나, 영상이나 문헌을 받아서 분석했다. 가끔 일본 영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것을 참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일본군 포로들이 꽤나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의문은 대게 같을 것이다. 1. 진짜 이렇다고? 2. 현대의 일본인은 어떨까? 3. 한국인은? 중국인이나 필리핀인은? 미국인은? 모든 국가가 이정도 수준의 특이성을 갖추고 있는걸까?

학교에 불이 나서 학교에 걸려 있는 천황의 사진이 탈 뻔했다는 이유로 -그 화재에 아무 책임이 없으면서도- 자살한 교장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천황의 사진을 구하기 위해 불타는 학교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가 불에 타 죽은 교사들도 여럿이었다. 이들은 죽음을 통해 자신이 이름에 대한 기리와 천황에 대한 주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증명한 것이었다. 또한 교육칙어나 군인칙유를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다 제대로 못 읽은 것에 죄책감을 느껴 자살로 오명을 씻은 사람들의 일화도 유명하다. 히로히토 천황 치세에서 별생각 없이 아들의 이름을 히로히토로 지었다가 아이와 함께 자결한 사람도 있었다(일본에서는 천황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변화하는 세계질서

레이 달리오의 <원칙>은 조금 애매했는데, 그의 유명한 부채사이클 그래프를 이해하고 싶어서 <변화하는 세계질서>를 읽어봤다. 무려 1부의 제목이 <세상의 작동 원리> 이다. 누군가에게 세상의 작동 원리를 물어보거나 질문 받은 적이 있는가? 황당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아? 라고 지레 포기할만한 질문에 대해서 작가는 시장을 알겠다는 집념으로 하나의 계를 만들어냈다. 이것이야말로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점에 있는 “계를 창조하는 자아”가 아닐까.

이 책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비슷한 경제를 표방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제국(기축통화국)의 탄생과 죽음을 하나의 빅사이클로 정의하고, 17세기의 네덜란드부터 영국, 미국을 거쳐 21세기의 중국까지를 얽어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빠짐없이 재밌지만, 아마 추천사로 가장 좋은 인용은 다음 문장일 것이다.

전・현직 국가 원수, 외무장관,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등은 물론이고, 세계 유수의 역사학자, 정치인들과 이야기해보니 각자가 서로 다른 퍼즐 조각을 들고 세상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정치와 지정학적 요소의 작용을 실제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는 데 부족했고, 이 사람들은 통화와 신용의 작용을 잘 몰랐다.